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평양 전쟁/배경 (문단 편집) == 일본의 남방 진출에 대한 경제제재 확대 == 동시에 일본은 동남아시아에 눈독을 들이는데, 이는 나치독일에 의해 혼란에 빠진 유럽의 프랑스나 네덜란드 등의 식민지 관리가 부실해진 틈을 타서 동남아시아를 점령, 풍부한 동남아의 자원으로 부족한 중일전쟁을 지속할 자원을 확보하고 해외경제에 휩쓸리지 않는 자급경제권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1940년 당시 유럽은 한창 2차대전 도중이었고, 폴란드와 베네룩스 같은 동유럽은 물론이요, 아시아 식민지를 갖고있던 프랑스와 네덜란드까지 모두 무너져 영국만이 홀로 독일에 맞서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것도 섬나라란 지리적 조건과 인도등의 식민지와 영연방 국가들이라도 있었기에 버틸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정부 역시 연설을 통해 국민들을 독려했지만 영국 혼자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괜히 처칠이 미국의 참전 소식을 듣고 "이제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쉰게 아니다.]. 따라서 남방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식민지는 사실상 모두 주인 없는 땅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쉽게 획득할 수 있으리라 보였던 것이고, 실제로도 그러긴했기에 태평양 전쟁을 과감하게 벌인 계기가 되었다. 그 중 가장 먼저 표적이 된 것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프랑스가 1940년 6월에 독일에게 점령당하여 항복하며 괴뢰국 비시프랑스 정권이 들어서고 일본은 동맹국이기도 한 독일의 괴뢰국인 비시프랑스와 협정을 맺어 지배권을 인정받음으로서 타국과의 마찰 없이 점령이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1940년 일본은 일본 제5사단을 인도차이나에 진군시켰고 그 유명한 추축국 동맹인 삼국 추축 동맹을 체결한다. 이 삼국동맹은 소련을 겨냥한 1937년의 삼국방공협정과 달리 당시 일본과 독일은 소련과 각각 중립조약과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고 있었기에 이 동맹의 겨냥점은 미국과 영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즈음 독일이 프랑스에 이어 네덜란드까지 공격 함락시키자 일본은 남방에 있는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를 압박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90%의 물자 독점권을 요구했고, 앞서 서술했듯이 프랑스가 함락되고 괴뢰국 (비시)프랑스가 들어서자 일본은 인도차이나로 들어가던 중국의 보급물자 공급을 막는 동시에 프랑스의 식민지를 압박했고, 나중에는 동남아시아에 병력을 주둔시켜서 완전히 삼킬 야욕까지 내비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에 1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였고 영국 역시 1만 파운드의 차관을 중국에 지원한다. 하지만 일본의 확장정책은 [[청일전쟁]]부터 일관되게 지속된 안보정책[* 경제자급권 형성, 중국시장의 이익 확보 등]의 일환이었고, 전쟁에 대한 국민의 지지 또한 확고했으며 연합국이 실제로 태평양에서 행사할 수 있는 군사력이 없다시피했으므로 외교적 압력으로 일본의 정책이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